2011년 새내기대학 프로그램에 참가하느라 정신없는 2주를 보내고 오늘 그 마지막 날.
나에겐 힘들고 재미없을 줄 알았던 강의가 의외로 재미가 있어진 건 학생들 때문이었다.
새내기다운 발랄함으로 수업 시간동안 나에게 자극을 주었고
가끔은 엉뚱함으로 당황하게도 긴장하게도 만들었던 우리반 새내기들.
기억날 것 같다. ^^
우리반 모두의 모습..
유난히 나를 따르던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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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평가를 지금 읽고 있는데 역시 너무 재미있다.
강의평가라는 것을 처음 해보는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글부터 찬양에 아부성이 강한 글까지...
학생들 필체를 대강 아는지라 이름이 없어도 누가 썼는지 알 것 같아 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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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할 때는 나는 학생들과의 관계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재미없는 강의 내용도 학생들의 반응이 좋으면 강의 내용이 어떤 방향으로든 좋아지고
아무리 준비를 많이 한 강의도 학생들의 반응이 없으면 많이 안 좋아지는데
이번 새내기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공으로 정말 재미있었던 강의가 되었다.
나의 그 썰렁한 농담을 이해해주고, 건널 수 없을 거 같던 세대차이도 좁혀보고...
거의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는 여행인데 참 태평하게 준비 안했음을 알았다. 게다가 그 곳은 영어도 안 통하는 곳인데 말이다. 서울과 거의 대척점이니까 여름이겠거니 예상했는데, 2007년 칠레에 갔던 사진을 보니 꾀나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다. 앗차차... 급히 같이 가는 일행 중에 미리 Chile Santiago에 가 계시는 이박사님께 현지 날씨에 대해 물으니... 아침, 저녁으로는 5도씨 안밖에서 한낮에는 20도를 훌쩍 넘어 20도 중반 정도까지 오른다고. 게다가 햇빛이 강해 썬글라스 없이는 못 다닌다고 한다. 박박사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신다. 얇은 옷을 켜켜이 껴입는 작전으로 가방을 쌌다. 썬글라스가 있을리 없는 나는 박여사에게 급히 썬글라스도 빌렸다. 결론은 가방이 무겁다. 짐을 짐칸에 실을지 말지 고민이 된다. 지난번에 가방이 뜯겨졌던 기억 때문인데...
열흘 정도의 일정이니 집에 필요한 것들을 미리 좀 챙겨두었다. 내가 없더라도 표는 안 나겠지만 그래도 괜한 걱정에 뭐 필요한 거 있는지 물어보게 된다. 아... 이 놈의 사서하는 걱정병은 언제 고쳐질까나?
일행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공항에서 만나는 약속을 안 했다는 것을 출발 직전에 인지했다. 연락을 돌려볼까 생각하다가 누군가는 연락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연락을 포기했다. 정말 아무도 연락을 안 했던 거라면 처음 가는 여행도 아닌데 시간되면 모이게 되겠지라는 생각이 들자 바로 인천 공항으로 출발했다. 때마침 문자가 온다. 박박사님이 인천공항 가는 길이라고...
10: 30 AM 6101번 버스 탑승 - 어라? 이 공항버스는 교통카드 단말기가 없다. 순간 당황... 기사 아저씨께 여쭈니 신용카드 단말기를 귀찮은 듯이 꺼내신다.
12: 00 PM 인청공항에 도착 -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KAL이 공항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기억이 안 난다. 일행도 안 보인다. 음... 문자온다. 어디로 오란다. ㅋㅋㅋ 좀 기다리니 다들 모여있는데 사부님은 벌써 출국장 안이라고 하신다. 발권 수속과 수하물을 부치고 출국장에 들어서니 목이 탄다. 커피가 간절해 슈렉 고양이 눈빛을 쐈더니 박부성 박사님이 커피를 사신단다. ^^ 그런데 이게 이번 여행의 실수가 될 뻔 한 줄 알고 한동안 마음 졸였다.
LA가는 비행기 안에서 영화 2편 반(시라노 연애 조작단, 마음이2, 인셉션 중간까지)과 다큐멘터리 2편(비틀즈와 존레논에 관한)을 봤다. LA에 도착해서 짐 찾고 입국심사 받고 또 출국심사 받고 이게 뭐하자는 짓인지...
산티아고에 가기 전 리마를 경우하는 일정인데 비행기에서 다 내리라고 해서 당황했다. 약식 입국 심사를 하는 듯 하다. 전에 안면이 있는 Morales 선생님을 뵈어 인사를 드렸다. 아마도 학회까지 같이 하겠지. 학회 장소에 가까워 질수록 일행은 더 많이 질 것이다. 구름 과자를 마실 기회를 노리시던 사부님과 오교수님은 리마에 잠시 내린 틈을 놓치시지 않았다.
2010. 12. 12 오전
산티아고 공항에 도착하여 잠시 공항 밖을 바라봤다. 공항 앞에 눈덮인 안데스 산맥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참 이색적이다. 보통 설산 앞에는 아기자기한 시골 마을을 상상하게 되는데 설산 앞에 거대한 현대적인 도시가 보이니 말이다. 아침의 산티아고 시내 전경을 보며 드디어 칠레에 도착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니 너무 피곤하다. 비행기 안에서 하려던 공부... 전혀 못하고 배는 고픈데 입은 깔깔하고... 눈 앞에 던킨도너츠가 보인다. 커피 주문을 하려고 보니 달러를 안 받는단다. 뭐? 칠레 페소 없이 잘 살 줄 알았는데 이건 말이 달라진다. 환전 안 했는데... 부랴부랴 환전하는 분도 계셨는데 나는 일단 신용카드로 버티기로 마음을 굳혔다.
비행기를 기다리며 지난 여행의 무용담을 들었다. 역시 사부님께서 경험이 많으시니 이야기꺼리도 제일 많으셨다. 소매치기를 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만원버스 안에서 당하셨던 모교수님의 이야기에 이르렀다. 순간 다들 농삼아 지갑을 단속하기 시작했는데... 어머나... 일행중 한 분의 지갑이 없다. 행적을 역추적해 인천 공항에서 커피값을 치루신 것까지 생각해 냈는데 괜히 커피 사달라고 했나싶어 약간의 죄책감마저 들었다. 뭐 결론은 수소문 끝에 산티아고 공항 유실물센터에서 빈지갑만 찾으셨는데 나의 죄책감이 덜어졌고 그나마 지갑이라도 찾았으니 다행이라 해야 하지만... 여정 내내 이 분은 참... 어렵게 살아남으셨다는...
산티아고에서 발디비아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다 보니 학회에서 뵐 분들을 거의 다 뵙게 되었다. 아슬아슬하게 먼저 산티아고에 와 계셨던 이박사님도 함류하셨다. David Leep 교수님은 처음 뵙는 분인데 또박또박 영어 발음을 해주시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따님이 용인에서 영어 선생님하신다고... Gerstein 선생님도 뵙고, Scharlau 선생님도 뵙고... 존경심과 설레임으로 내 마음이 가득찼다.
2010. 12. 12 오후
발디비아 공항에 도착하니... 오마나 수하물 내리는 곳이 공항 밖이다. 완전 수작업... 이것도 볼꺼리라고 처다보고 있는데 겨울 코트를 입고 있는게 다행일 정도로 춥다. 학회지 Futrono, Lake Lanco 까지 또 2시간 남짓 가야한다는 이야기에 진짜 소리 지르고 싶었다. 이러다간 정말 집나와서 48시간 채우지 싶다.
Futrono, Lake Lanco에 도착해서 숙소를 배정받았는데 완전 별장이다. 호텔이 아니란 말씀. 이번 학회 organizer이시면서 나와는 coworker이셨던 Icaza 선생님께서 고생했다고 안아주신다. 늦은 점심을 먹고 씻고 자고 싶었는데 환영 리셉션이 있단다. 학회의 꽃은 회식 아니던가? 갔다. 리셉션 장소에서 갖가지 무용담이 쏟아진다. 흡사 누가누가 힘들게 왔나를 자랑하는 것 같다. 결론은 브라질을 경유해서 왔던 일본팀의 우승. 한국팀이 준우승쯤 되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