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지내던 학교라는 곳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괜히 가슴 한 쪽이 찡합니다.

내 평생이라봐야 30년 남짓인데 그 중 10여년을 보낸 곳을 떠난다는 생각에 더 그런 듯 합니다. 잠시 잠깐 자리를 비운 적은 있지만 학교 안에서 제 자리를 없애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 더 그런 듯 합니다. 연구실을 지금 있는 건물의 4층에서 3층으로 옆방에서 앞방으로 옮기기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앉아 있는 이 자리에서는 공부가 맛있다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고, 논문 자격 시험 공부도 했고, 박사학위 논문도 썼습니다. 이 자리에서 말이죠.

지나고 보니 저의 소중한 20대와 30대를 학교에서 보냈습니다. 일에 대한 실패도 약간의 성공도 모두 맛보게 해 준 곳이 학교이고, 20대 중반에 처음 늦되게 맞이했던 첫사랑의 설레임도 첫사랑 실패의 아픔을 같이 한 곳도 학교입니다.

저녁을 먹고, 학교 안을 한바퀴 돌았습니다.

창문너머로 보이는 관악산도,
언제나 들리는 캠퍼스안 공사장 소음도,
쾌쾌한 중도의 옛날 책 냄새도,
유달리 남몰래 연애하기 좋던 그 장소도,
매일 왔가갔다 했던 버스 정류장도,
맛없다고 툴툴거리면서도 매일 찾던 학교안 식당도,
언제나 반갑게 인사해 주시던 토판 아주머니도,
조금만 자주 안 가도 무심한 듯 왜 자주 안 왔냐고 물어보시는 빵집 아주머니도
이제는 자주 보기는 힘들겠군요.
무엇보다 마음만 먹으면 찾아뵐 수 있던 지도 교수님도 큰 맘 먹고 찾아뵈야 겠군요.

며칠 전 새 직장에서 offer letter를 받을 때만해도 아 그렇구나 했는데, 오늘 계약서에 서명하러 오라는 말을 들으니 더 그렇습니다. 아마 연구실 이사짐을 싸면서는 더하겠죠? 여기저기 박아두었던 추억들이 또 나타나겠죠?
그나저나 저 많은 책과 논문들은 언제 다 종이 상자 안에 넣을 수 있을까요?

괜히 감상에 젖어듭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새 직장, 그 곳에서 만나게 될 그 새로움에 더 기대가 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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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han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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